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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서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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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對 책 2

소설이란 원래 여행과도 같은 것

소설이란 원래 여행과도 같은 것

서명 : 지금 행복해

글쓴이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저/역자 : 성석제

출판사 : 창비

2008-10-01 / 280쪽 / 9800원 / 독자대상 : 고

한 가지 고백에서부터 이 글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 그러니까 아마 97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친구 한 명이 불쑥 책 한 권을 내게 내밀었다. “시인이 쓴 소설이라는데, 한 번 읽어 봐.” 나는 좀 짜증나는 표정으로 책을 받아들었다. “하여간 이런 인간들이 제일 짜증나. 이건 뭐 업계 윤리라는 게 없잖아. 시인이면 얌전히 시나 쓸 것이지.” 나는 그런 비슷한 말을 하면서 책을 훑어보았다. 훑어보면서도 내심 이런 기대를 했었다. “시인이 소설을 썼다면 안 봐도 뻔하지. 아, 또 얼마나 따분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종이 아깝게 늘어놓으셨을까?” 나는 미간부터 찌푸리며 책장을 넘겼다. 한 장 두 장, 인상을 쓰며 소설을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정좌를 한 채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책에 있는 모든 소설들을 다 읽어버렸다. 책을 덮은 다음 나는 또 혼잣말로 트집을 잡았다. “재미는 좀 있네. 한데 이 양반이 시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소설도 용인해주는 걸거야. 나 같은 문청이 이런 소설을 썼다면 가볍고 경박하다고 댓바람에 욕부터 해댈 걸? 뭐, 이 양반도 이러다 말겠지. 그냥 다시 시로 돌아가고 마시겠지….”
그러나 이러다 말겠지 했던 양반은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그러시고 계시다. 그 양반이 바로 소설가 성석제이고, 그때 내가 읽은 소설집은 그의 두 번째 소설책인 『새가 되었네』였다. 십년 동안 그는 거의 열 권에 가까운 소설집과 네 권의 장편소설, 여러 편의 산문집과 짧은 소설집을 펴냈다. 가히 무슨 반도체 공장과도 같은 생산력이요, 글 귀신 같은 창작력이다. 책을 낸 횟수에 비례해, 그를 사랑하고 그를 기다리는 독자들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니, 그는 정말 행복한 ‘소설가’임이 분명하다.

그 행복한 소설가가 이번에 『지금 행복해』라는 제목으로 열한 번째 소설책을 펴냈다. 『참말로 좋은날』 이후 2년 만이고, 그 중간에 『소풍』이라는 산문집을 한 권 상재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 행복해』를 읽은 독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이전의 성석제표 소설과는 조금 다른, 헐거워진 것 같기도 하고, 나와야 할 인물들이 모두 등장하지 않고 그대로 마무리되는 듯한 인상 때문일 것이다. 유머가 약해진 것일까? 한데, 문장 곳곳에 살아 숨쉬는 해학과 익살은 그대로인데, 도대체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빠져버린 것일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저 극악무도한 ‘조동관’과 순진무구한 바보 ‘황만근’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성석제라는 소설가가 우리 문학사에 끼친 영향 중 으뜸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인물군들을, 도저히 문학 속으로 편입시킬 수 없었던 캐릭터들을, 과장되고 엉뚱한 방식 그대로, 아니 좀 더 과장되고 좀 더 엉뚱한 방식으로 소설 속에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인물군들이 새롭게 소설 속에 등장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인물들이라면 저 멀리 김유정에서부터, 가까이로는 이문구까지 계속 존재해왔던 친구들이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성석제의 친구들이 다른 작가들의 친구들과 다른 점은, 그들이 그들을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냥 그들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 존재하는 것 자체를 보여준다는 점, 이것이 성석제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형상화된 지점이다(우리에게 ‘조동관’과 ‘황만근’이 낯설고 어색했던 것은, 어쩌면 우리의 관성 탓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꾸 ‘조동관’과 ‘황만근’을 어떤 상징체계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이 판타지처럼 보여졌는지도 모른다).
성석제의 이런 형상화는 다분히 윤리적이다. 타자를 임의로 해석하거나 억지로 끌어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는 이런 윤리성으로 우리 문학사의 엄숙주의와 과도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성,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던 소설의 계몽주의를 각개격파해 나갔다. 그에겐 도박꾼이나 제비, 술꾼이나 소설가, 동네 양아치의 차이는 없다. 다만 그들이 살아가고 관계 맺는 방식이 중요할 뿐이다. 그 방식이 그의 소설의 요체인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지금 행복해』 또한 그런 그의 작품세계와 크게 차이점이 없다. 그런데도 이번 작품집이 우리에게 좀 낯설게 읽히는 까닭은, 아마도 등장인물들의 위치 때문일 것이다. 책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인 <여행>에 등장하는 친구들이나, <설악풍정>의 주인공 ‘나’, <톡>에 나오는 무수한 주인공들과 <낚다 섞다 낚이다 엮이다>의 ‘그’까지, 그들이 맞부닥뜨린 상황이 좀 예외적일 뿐, 그들 자체로는 단 한 명도 예외적인 친구들이 없다(표제작인 <지금 행복해>의 아빠만이 좀 예외적인 인물인데, 그 또한 작품 말미에선 평범하고 특수성 없는 인물로 변모하고 만다. 더구나 작가는 그의 예외성에 유전자적 특성을 부여해 그 예외성이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독자들에겐 좀 밋밋한 인상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독자들은 언제나 소설에서 자기와 다른 모습들을 만나길 원하는 법이니까).
한데, 앞에서도 한 번 말했지만, 그런 평범한 인물들이 마주치는 상황은 결코 예외적이지 않다. 모두 산에서 길을 잃거나, 재래식화장실에 빠지거나, 릴낚시에 걸려 수십 미터를 질질 끌려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작가의 의도는 어쩌면 이미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전작들이, 예외적인 인물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예외성을 잃어갔는지, 그것들에 대한 집요하고 서글픈 탐사였다면, 이번 작품집은 평범한 인물들이 예외적인 상황을 만나 어떻게 자신의 숨겨진 예외성을 회복하는가에 맞춰진 것이다. 그리고 그 예외적인 상황 중 하나로 작가는 ‘여행’을 선택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듯, 여행이란 우리의 숨겨진 본성과 편견을 드러나게 해주고, 수많은 의외성과 난관을 만나게 해주며, 우리의 폭력성과 동물성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때때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의 결과 때문에 더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것들을 빤히 알면서도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축소판 혹은 단면이기 때문에 그렇다. 일상에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억압하고 잘 감춘 채 살아가고 있는지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해방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사람을 잘 알고자 한다면 함께 여행을 가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성석제의 이번 소설집은 바로 이런 기조 아래에서 씌어졌다. 우리가 첨단의 시대 속에서 견고하고 세련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만 흔들면 곧바로 우리의 본성이 튀어나온다는 것, 우리의 본성은 변치 않았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제대로 된 관계를 맺으려면, 그 본성을 이해하고, 그 본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좀 밋밋해졌을지 몰라도, 더 깊어져버렸다. 더 깊어져서 가끔 우리를 서늘하게 만든다. 우리 역시도 그 상황에선 별 수 없으리라는 생각, 그 대입 때문에 그렇다.
사실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쓰는 것 역시 여행을 떠나는 것과 흡사하다. 모두 우리의 숨겨진 본성과 타인의 감추어진 내면을 탐구하는 일이다. 그 속에서 나와 타인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지금 행복해>의 주인공 아빠가 아들에게 하는 말, ‘우리 지금부터 평등하게 지내자’ ‘친구하자’의 관계도 성립되는 것이다. 소설가들이란 예나 지금이나 모두 외로워, 늘상 친구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족속들이니,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길 위에서 만나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길 위에서 씌어진 소설 중 하나가 바로 <지금 행복해>이다. 성석제는 지금도 계속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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