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보기 웹진 하위메뉴 및 검색으로 가기 전체메뉴로 가기

웹진

메일 매거진 발송 신청

2008년 겨울
서평문화

'이달의 읽을만한 책',;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서평문화','책& 등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책을 보실 수 있는 웹진입니다.'

홈 > 웹진 > 서평문화 > 책 對 책 1

책 對 책 1

중국현대사를 횡단하는 장엄한 입심

중국현대사를 횡단하는 장엄한 입심

서명 : 인생은 고달파(1, 2)

글쓴이 : 전성태 소설가

저/역자 : 저자 _ 모옌 역자 _ 이욱연

출판사 : 창비

2008-10-06 / 527523쪽 / 12000원 / 독자대상 : 고

모옌은 당대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최근 몇 년 새 국내에도 중국소설 출판 붐이 일면서 모옌을 필두로 한샤오공韓少功, 수퉁蘇童, 위화余華, 류전윈劉震雲 등 중국 현역작가들의 작품 출간이 줄을 이었다. 모옌은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1989년 국내에 처음 작품이 소개된 이래 지금까지 대략 9종의 작품집이 출판되었다. 장편소설 『인생은 고달파生死疲勞』는 2006년에 출간한 모옌의 최근작이다. 작년에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출세작인 『홍까오량 가족』이 국내에 완역됨으로써 우리 독자들은 그의 작품들을 대부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은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선 중국에 문학예술이 살아남았는가, 하는 세계인의 의문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이 영화를 물꼬로 변방으로 나앉아 있던 중국의 문예물들이 놀라운 기세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1980년대 말에 소개된 마오둔茅盾의 『자야子夜』라든가 딩링丁玲의 『태양은 상건하에 비친다』 등 몇 편의 중국 근대소설을 아주 흥미롭게 접한 독자 입장에서 긴 간극을 두고 새로이 출현한 작품들을 대하는 감회가 남달랐다. 일테면 전자의 소설들이 그린 새로운 사회 건설을 향한 열정에 불탔던 중국 인민들이 도대체 그 후 어떤 사회를 만들고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 후일담에 대한 갈증이 컸는데, 모옌과 같은 젊은 작가들은 그 간극을 가로지르며 당대 중국 인민들의 삶을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 『인생은 고달파』는 특히 딩링이 토지개혁에 동참한 농민들을 실감나게 그린 1948년 작 『태양은 상건하에 비친다』에 잇대어 읽히는 묘미가 있다.

소설의 배경은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 이듬해인 1950년부터 2001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있다. 다시 말해 토지개혁, 대약진운동, 문화혁명과 그 후 개혁개방,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숨 가쁜 중국현대사를 발 빠르게 섭렵한다. 모옌은 일관되게 자신의 고향인 산둥山童 까오미현高密縣을 작품 무대로 삼아왔다. 이 소설 역시 까오미 서문촌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농민들과 그 후손들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극단의 체제를 헤쳐 온 이야기이다.
독특한 서술방식을 빼놓고는 이 작품을 말할 수 없다. 악덕지주로 몰려 총살당한 서문촌 지주 서문뇨西門鬧가 나귀 소 돼지 개 원숭이 사람으로 환생을 거듭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기에 서문뇨의 머슴이었던 남검의 아들 남해방과 서문뇨의 환생인 다섯 살 아이 대두 남천세, 그리고 작가의 분신 역인 막언이 화자로 더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소설의 큰 줄기는 육도윤회를 거듭하는 서문뇨의 기억을 빌고 있다. 『삼국지연의』나 『수호전』에서 볼 수 있었던 전통 장회체章回體 형식을 취한 이 소설은 4부 53장으로 구성되고, 마지막에 에필로그 격으로 5부가 덧붙어 있다. 모옌은 창작기법상 시점 선택에 심혈을 기울이는 작가이다. 이 소설의 경우 50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서사전략으로 윤회라는 불교적 상상력을 활용했다.
그 결과 1인칭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전지적 시점에 가까운 시야를 확보하여 긴 시간적 배경과 많은 등장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또한 윤회 모티브 자체가 한 편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어 흡인력을 더하며, 만담가나 전기수傳奇처럼 소설 곳곳에서 화자가 독자에게 ‘친애하는 독자 제군’하고 직접 말을 건네 호흡을 가다듬기도 한다. 형식에 거침이 없을 만큼 장쾌한 화법이라고 할까. 마치 이야기를 듣는 청자들 속에는 돼지나 개도 함께 앉아 있을 것만 같다. 어쨌든 모옌은 전통서사를 풍부하게 활용하여 중국식 혹은 동아시아적 서사양식을 실험하는 데도 공을 들인다.
서문뇨에게는 본부인 백씨 말고도 영춘과 오추향이라는 두 명의 첩이 더 있다. 서문뇨가 죽고 나자 이들은 각기 서씨 가문의 머슴이었던 남검과 서민촌 민병대장인 황동에게 개가한다. 둘째부인 영춘은 서문뇨와 사이에 낳은 금룡과 보봉 남매가 있으며, 남검과 재혼 후 아들 남해방을 낳는다. 셋째부인 오추향은 황동에게 개가 후 쌍둥이 자매 황호조, 황합작을 낳는데 이들은 뒷날 금룡, 해방 형제와 각각 결혼한다. 소설은 이들 서문뇨 집안 인물들과 서문촌 사람들에게 골고루 배역을 주지만 그 중 누구보다도 남검과 그의 아들 남해방은 각별하다. 내림으로 ‘얼굴 한 쪽이 파란’ 이들은 역사에 길들여지지 않는 자율적인 영혼들이다. 파란 얼굴 반쪽은 마치 중국현대사의 두 극단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혹은 운명의 두 극단적인 면이 체현된 상징적 인물들로 비친다.

남검은 특유의 고집과 열정으로 사회주의 건설기를 겪어낸다. 그는 모든 농촌이 인민공사라는 이름으로 집단화될 때 중국에서 유일하게 개인농의 길을 걷는다. 반동으로 위협받고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끝내 가족들까지 등을 돌려 인민공사에 입사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1무 6푼의 조막만한 토지를 묵묵히 경작한다. 모택동 주석이 사망하여 온 중국이 비탄에 잠겨 있을 때도 그는 “주석님이 돌아가셨어도 난 살아야 하지 않겠어? 저기 저 벼들을 다 베야 하고”하며 낫을 들고 나서는 농민이다. ‘모든 사람들이 태양을 찬송하는 그 시절에, 한 사람이 달과 깊은 정을 나누고 있었다’고 묘사되는 농민으로서 그의 삶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는 극좌적 사회주의운동에서 간과한 인간의 근원적 생명력을 돌이켜 보게 하는 문제적 인물이라 할 것이다.
남검은 후반부에서 중심인물로 활약한다. 모택동 사후(1976년) 시장경제가 도입된 혼란기에 얼굴 한 쪽이 파란 그 역시 운명과 불화한다. 내림받은 특유의 생명력으로 부현장까지 승승장구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처녀와 파멸적인 사랑에 빠져 추락하고 만다. 이들에 비해 서문금룡과 서문촌 촌장 홍태악은 서로 극단의 위치에서 중국현대사에 동참한 인물들로 그려진다. 금룡은 자본주의를 구가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홍태악은 교조적인 사회주의자의 전형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어머니 영춘의 장례식에서 홍태악이 ‘마지막 투쟁’과 ‘인터내셔널’을 부르짖으며 금룡과 함께 자폭하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 크다. 개인농 남검의 유명한 땅은 서문 집안의 비극적 주검들의 묘지로 변한다. 거기에는 서문뇨의 환생들인 축생들까지 묻힌다.

이 소설은 50년의 중국현대사를 가로지르지만 역사소설인 것만은 아니다. 모옌은 일찍이 ‘소설가의 창작행위란 역사의 복제가 아니며, 역사의 복제란 역사가의 임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그가 소설에서 주목하는 것은 역사 자체이기보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뚫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다. 왜곡된 영혼과 상처 입은 인간성에 대한 탐구가 모옌 문학의 고집스런 주제다. 그에게 중국 현대사 반세기는 20세기 인류의 실험장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소설의 미덕은 각 인물들이 역사라는 엄중한 현실에 발을 디딘 채 제 운명껏 목소리를 낸다는 점일 것이다. 그건 때로 자연주의자의 시선처럼 냉혹하고 그로테스크하기도 하지만 삶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봐라, 삶은 이런 것이다! 모옌은 분명 대륙적인 입심을 타고난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중국적인 허풍과 과장, 기상천외한 상상력은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 위로 가볍게 미끄러지게 하지만 정작 독자가 둔중하게 깔아뭉개고 앉은 것은 가시 돋힌 삶이다.
과장과 허풍으로 빚어진 해학성은 비단 모옌만의 특장은 아니다. 요즘 중국 소설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중국 소설의 해학성은 유구한 서사문학에 그 전통이 닿아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문화대혁명 이후 일명 ‘상흔문학’으로 일컬어지던 전 세대 문학이 갖는 엄숙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반동일지 모른다. 아무튼 그것이 회복이든 획득이든 소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창작방법은 문화대혁명과 같은 비극적 역사를 전달하는 데는 더없이 유력하지만 복잡다단한 자본주의적 삶들을 묘파해내는 데는 힘이 부쳐 보인다. 『인생은 고달파』의 전반부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지나치게 숨 가쁘고 기우뚱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는 모옌의 소설에서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다. 위화의 근작 『형제』에서도 똑같이 목격된다.
우리뿐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지나치게 익숙한 현재적 삶을 좀 더 낯설면서도 핍진하게 조망할 수 있는 시야의 확보는 당대 중국소설가들이 직면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는 또한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진입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사이트 정보

서울시 강서구 방화3동 827 국립국어원 4층 우)157-857 대표전화:02-2669-0700 팩스:02-2669-0759 담당자:박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