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보기 웹진 하위메뉴 및 검색으로 가기 전체메뉴로 가기

웹진

메일 매거진 발송 신청

2008년 겨울
서평문화

'이달의 읽을만한 책',;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서평문화','책& 등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책을 보실 수 있는 웹진입니다.'

홈 > 웹진 > 서평문화 > 특집3

특집3

자살 예방, 어떻게 도울 것인가

자살 예방, 어떻게 도울 것인가

서명 :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

글쓴이 :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저/역자 : 오진탁

출판사 : 세종서적

2008-08-20 / 255쪽 / 12000원 / 독자대상 : 고

아직 통계 조사체계가 열악하던 70년대와 80년대에 이미 정신과 의사들은 한국의 자살률이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짐작하고들 있었다. 임상에서 집안에 자살한 사람들이 있으면, 집안의 체면 때문에 자살이 아니라 ‘병에 의한 급성 사망’이라고 경찰에 신고하고, 별다른 혐의가 없는 것 같으면 부검도 하지 않은 채, 사건이 흐지부지 종결되곤 하는 것을 직접 간접으로 보고 듣기 때문이었다. 사망자에 대한 보고와 관리가 좀 더 엄격해진데다가, 여러 가지로 사는 것이 더 경쟁적이고 팍팍해진 요즘,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통계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수명이 길어지면서 빈곤 노년층과 노인의 유병률은 증가하는데 그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노인들의 자살률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젊은층이나 청소년들도 빚에 몰려, 취직이 안 되어, 입시에 실패해서,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배신을 당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살을 하고 있다. 이제는 자살이 뉴스에서 듣는 남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전염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자살의 원인은 첫째, 상대방 혹은 외부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실망감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공격의 화살이 자기에게 돌려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자면, 자기를 떠난 배우자가 몹시 미워 죽이고 싶은데, 차마 그러지는 못하니 차라리 내가 죽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에게 너무 화가 나는데, 그 화를 풀 방법이 없으니, 내가 죽어서 부모가 두고두고 가슴을 찧고 후회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자살을 기도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두 번째로는 ‘나’란 존재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거나, 왕따를 당해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이들이나, 삶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해 자신이 아무 쓸모없는 벌레나 하찮은 짐승처럼 취급당한다고 느끼는 이들은 죽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에 빠질 수 있다.
세 번째로는 극도의 우울증 등으로 극도의 무력감, 무의미감을 느낄 때,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해나 자살 기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 주는 사람도 없어 마치 박제된 동물과 같은 기분에 빠질 때 역설적으로 자신이 살아 있고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자살 기도를 하는 것이다.

오진탁 소장의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은 자살에 대해서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하는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철학 전공자답게 자살에 대해 깊이 있는 철학적 고찰을 한 책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사실은 좀 아쉽다. 철학을 공부한 저자라서 삶과 죽음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회의에 대한 논의를 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차피 죽을 건데 도대체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실존적인 질문을 하는 젊은 자살 예비자들의 논리를 깰 수 있는, 보다 설득력 있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어서 솔직히 조금 실망한 부분도 있다.
물론 철학자라고 해서 일반인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학자의 논조를 갖는 책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본다. 상아탑에 갇혀서 고사枯死하기보다는 저잣거리에 나와, 보통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철학의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도 새로운 철학의 방법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지엽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책의 앞과 뒤의 내용 중에는 겹치고 반복되는 부분도 있어 산만하고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학문적으로 오래 숙고하여 정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저널리스트나 사회학자처럼, 신문 지상에 나온 기사들이나 정부 기관에서 나온 통계 등을 중심으로 자살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 방법론을 쓰고 있는데, 좋은 점과 단점이 같이 있을 것 같다.

우선은 워낙 우리 사회에 자살률이 높아지다 보니, 이런 책들이 하루 빨리 나와 일반인에 대한 계도가 필요한 면도 부정할 수가 없다. 예컨대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 경험을 토대로 보통 학생들의 자살에 대한 태도와 교육에 의한 그 변화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데, 이런 교육의 경험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의 생각을 되돌리게 했다면, 고차원적인 철학논문이나 방대한 저술보다는 오히려 더 가치가 있는 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워낙 한국 사회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현장의 체험을 통한 구체적 작업과 조직화는 시급한 일일 수 있다고 본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진 가족이나 친구들의 마음에 깊이 남은 상처들, 또 자살기도를 한 후 살아남아 생긴 후유증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들을 고려하면 특히 더 그렇다.
농약을 들이 마신 후 식도가 협착이 되어 몇 달에 걸쳐 서서히 죽어가는 환자들, 온몸에 신나를 끼얹고 자살기도를 했다 살아남아 화상 병동에서 죽음보다 더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 물속에 빠지거나 가스를 들이마신 후 뇌사 상태에 빠져 온 집안의 가산을 탕진하게 한 경우들을 보면서, 자살은 본인과 남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참 가혹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저자는 그와 같은 생각을 개인적인 감상의 수준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참여를 통해 자살기도자나 자살자의 가족들을 도우려 하는 것이니 매우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감수성은 예민하지만, 삶에 대한 현실감각이 부족하고 아직 죽음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삶과 죽음에 대해 아주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보는 훈련이 꼭 필요할 것 같아, 오 교수의 강의가 특히 값질 것 같다. 대부분의 부모들이나 사회가 ‘잘 먹고 잘 살라’는 것만을 추구하면서 무한 경쟁을 강요하고 있는 동안, 순수한 젊은이들의 마음은 곪고 썩어가면서 남몰래 자살을 도모하는 경우가 참 많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생생한 육성을 특히 기성세대들이 많이 읽고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느낌도 들었다.

노인들의 자살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위해 희생한 부모들의 노고는 모른 채 오로지 제 한 몸과 제 자식의 안녕에만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은혜 모르는 젊은 부부들이 참 많다. 물론 각자 완벽하지 못한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 한恨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어, 남들이 사적인 가정사에 대해 간단하게 왈가왈부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처럼 서글픈 노인들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단순히 자식들이 그럴 수도 있다, 하고 어정쩡하게 넘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과거가 아무리 화나고 괴로울지라도 현재 자신이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단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아픈 노인들을 대책 없이 방치하는 것은 반윤리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과거 잘못은 잘못이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예의라 생각한다. 노인들이 요즘과 같은 개인주의적인 세상이 도래할 줄 미리 예측하고, 좀 더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노후를 완벽하게 대비하였다면 좋겠지만, 또 우리나라가 아주 잘 살아서 사회 보장이라도 철저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재는 이도 저도 아닌 과도기적인 상황이라 불쌍한 노인들에게는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식들에게 배신당하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고립감과 절망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에서 이 책의 문제제기는 매우 타당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좀 아쉬운 점은 최면에 의한 전생요법은 정신과학회나 의학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한 치료법이기 때문에, 이 책의 권위와 연구소활동의 합리적인 정당성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뉴에이지 운동을 신봉하거나, 불교의 윤회사상을 깊이 믿는 것은 좋다. 그러나, 과학이 아닌 방법을 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치료라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신앙은 신앙이고 의학은 의학이니, 그 둘의 구별은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한다.
의학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 예컨대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하는 이들에게 종교적이고 철학적 접근만 고집하다보면, 치료 기회를 놓쳐서 환자와 그 가족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의 도움이 필요 없는 정상인들에게는 종교와 철학에 관한 질문과 논의가 가능하지만,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과 같은 문제가 심각한 환자들에게는 한가한 토론보다는 약물 투여와 입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의료인이 아닌 철학자가 이런 책을 통해 자살기도자 또는 자살한 이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깊이 천착하고 실천하고 있는 만큼, 의료계에서도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와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못해 접근성이 용이하지 못한 점이 많다. 의료인뿐 아니라 다양한 전공을 가진 연구자들이 매스 미디어나 국가기관들과 더 긴밀하고 적극적인 협조를 계속해 자살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도 덧붙이고 싶다.

사이트 정보

서울시 강서구 방화3동 827 국립국어원 4층 우)157-857 대표전화:02-2669-0700 팩스:02-2669-0759 담당자:박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