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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서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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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

서명 : 품위 있는 사회

글쓴이 : 김종호 문화일보 논설위원

저/역자 : 저자 _ 아비샤이 마갈릿 역자 _ 신성림

출판사 : 동녁

2008-09-25 / 308쪽 / 15000원 / 독자대상 : 고

대만의 국가원수로 재직할 당시 청렴한 정치 지도자의 상징처럼 떠받들리던 천수이볜 전 총통이 퇴임한지 6개월도 채 안돼 부패한 탐관오리의 전형으로 낙인 찍히며 수감된 지난 11월 12일, 외신은 “앞으로는 다른 호칭 없이 2630번이라는 수인 번호가 그의 이름을 대신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구치소 측의 말을 전하면서 “넘버 원이 넘버 2630으로 전락했다”고 표현했다. 천수이볜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죄수는 예외없이 이름을 수인 번호가 대신한다,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축구·야구·농구 등 스포츠 선수들의 등 번호와는 과연 다른 의미인가.
이런 식의 의문을 가진다면, 이 책의 논리적 성찰을 좇는 일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누구나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사실이나 현상을 통해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조건이 무엇인지, 왜 그런지에 대한 철학적 사색의 과정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다른 표현에 해당하는 ‘품위 있는 사회’는 어떤 것이고, 그런 사회가 되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환경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색다른 사유의 체험으로 이 책은 이끈다.

천수이볜과 스포츠 선수의 경우를 이 책의 방식으로 일반화해 설명하면 이렇다.
“이름은 인간의 정체성의 표지여서 우리는 이름과 아주 강한 일체감을 갖는다. 어떤 사람이 자기 이름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만드는 일은 심각한 모욕 행위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을 그의 이름과 관련짓는 것을 조직적으로 거부하는 일은 그 사람의 인간적 정체성의 표지를 지워버리는 행위다. 매직 존슨을 32번으로 혹은 래리 버드를 33번으로 환유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물론 더없는 명예의 표현일 수 있다. 농구팬들에게는 이런 셔츠 번호가 그 선수들의 특별한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옥에서 이름 대신 숫자를 사용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행위이며, 이는 그 사람을 인간의 가족에서 배제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을 번호로 본다는 의미다.” (232쪽)

이 지점에서 사색이나 논의를 멈추면, 이 책의 결론적 핵심에 다가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지점에 이를 위험도 있다. 그 점 역시 이 책이 가진 매력의 하나다. 무거운 주제에 대해 논의를 흥미로우면서도 깊이 있게 이끌어 중단하기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 인식의 지평을 크게 확장하게 된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 논의의 연장은 이런 식이다.
사람을 인간의 가족에서 배제하는 것은 모욕이라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이다. 모든 모욕이 인간의 가족에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은 성립한다. 여권번호·주민번호·운전면허번호·의사면허번호 등도 스포츠 선수의 등 번호와 마찬가지로 특정 개인을 번호로 나타내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모욕이 아닌 이유는 수인 번호와 달리 `“정체성을 확인할 수단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특징이 번호일 때”(234쪽)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족에서 배제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감자의 이름을 수인 번호로 대체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가. 이 책의 논리에 따라 단순화시킨 결론을 말하자면, 그것이 인간의 가족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의도라면 정당하지 않다. 수인 번호를 해당 수감자의 정체성을 대신하는 유일한 것으로 삼는 제도라면 ‘품위 있는 사회’에서는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수감자에게 수인 번호를 부여하는 일이, 나아가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반드시 인간의 가족으로부터 배제하는 일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본질적으로 모욕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범죄자를 처벌한다는 사실이 그들을 진지하게 인간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라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 책은 후자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비친다.

“처벌과 그에 연루된 모든 고통은 처벌받는 사람이 처벌 가능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는 주장이 있다. 처벌 가능한 존재라는 말은 도덕적 주체라는 말이고, 이는 그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는 의미다.” (279쪽)

이런 주장의 바탕 위에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속성 중 하나인 창피주기를 모욕과 구분하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범죄자를 감금하는 처벌은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 즉 그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불명예스럽게 만들려는 의도를 갖는다. 물론 여기서 훼손되는 것은 오직 사회적 명예여야 한다. 만일 창피주기가 극에 달한다면 인간 존엄성에 대한 훼손, 곧 모욕이 되어 버린다.”(278쪽) 수감자에게 수인 번호를 부여하거나 범죄자를 처벌하거나 하는 일이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넘어선 인간이라는 가족으로부터의 배제는 아니어야 정당화할 수 있고, ‘품위 있는 사회’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도 인간 존엄성을 배려하는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사회라는 것이다.

개인적 흥미와 편의에 따라 수감자의 예를 앞세워 이 책의 논의 일부를 두서없이 좇았지만, 저자의 서술 순서와 방식은 `1부 모욕의 개념, 2부 존중의 근거, 3부 사회적 개념으로서의 품위, 4부 사회제도의 검증 등 체계적이고 아카데믹하다. `품위 있는 사회는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다. 나는 품위 있는 사회와 문명화된 사회를 구분한다. 문명화된 사회가 구성원들이 서로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면, 품위 있는 사회는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다. 이렇게 머리말에서 규정한 그대로 품위 있는 사회의 조건에 해당하는 주요 개념에서부터 복식을 비롯한 특정 사회 생활 양식, 사생활 관료제, 복지제도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사례를 풍부하고 적실하게 인용하며 일목요연한 논리를 전개한다.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은 사회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제도가 작동하는 사회 그리고 품위 있는 사회를 사실상 동일한 선상에서 파악하는 저자가, 품위와 직결되는 자존감의 반대 개념으로 내세우는 모욕에 대한 논리 전개만 해도 그렇다. `모욕은 ‘자존감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할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 행동이나 조건’이라는 저자의 정의도 예화를 통해 개념을 이런 식으로 구체화해 제시한다.

“너무 심한 불구여서 가까이 있는 개들조차 어르렁거렸다는 리처드 3세가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한탄할 이유는 충분했겠지만, 우리가 그의 외모를 인간의 어떤 행동이나 태만 탓이라기보다 자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한 그가 모욕감을 느낄 타당한 이유가 없다. 오직 인간만이 실제로 모욕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할지라도 상대를 모욕할 수 있다. 모욕하는 사람이 없이는 모욕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모욕감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그럴 의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모욕감을 주는 사람이 없는 모욕이 존재할 수는 있다.” (24쪽)

저자가 제1부에서 구체적으로 개념화한 모욕의 개념을 제4부에서 이어받아 그 모욕이 자존감을 훼손하는 사생활 침해와 어떤 상관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밝히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 등장하는 현실을 집약한 인물 카타리나 블룸을 통해 ‘분명한 것은 권력과 명성의 갑옷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그의 자존감을 훼손한다는 사실’이라며 ‘모욕하지 않는 사회인 품위 있는 사회는 기본제도 차원에서 사회 안에 있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에 쉽게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예화와 논리 전개 과정 등이 그렇다. ‘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을 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근거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인 품위 있는 사회를 묘사하는 적합한 개념으로 저자가 자존감과 함께 내세우는 권리, 명예 등에 대한 논의도 다양한 가지를 치지만 결국 같은 궤도를 따른다.

“인터넷에서 섹스를 멀리 떼어놓고 싶어 하는 정치가들의 입을 통해서만 품위라는 개념이 정치판에 등장하는 시기에, 사회의 약자를 모욕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지금껏 철학자들에 거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지적인 논의”를 “무겁지 않으면서 진지하게 접근하는 눈부신 책”이라고 한 <뉴욕리뷰오브북스>의 앨런 라이언의 찬사가 공치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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