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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서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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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사람은 놀이를 통해 배우고 자란다

사람은 놀이를 통해 배우고 자란다

서명 : 열두 가지 전래놀이의 아주 특별한 동화

글쓴이 : 이승하(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저/역자 : 강정규 외 지음/이상호 외 그림

출판사 : 파랑새어린이

2003-02-07 / 192쪽 / 8000원 / 독자대상 : 고

내 딸 민휘에게
민휘야. 아빠는 최근에 책을 한 권 읽었단다. ‘파랑새어린이’란 출판사에서 낸 『열두 가지 전래놀이의 아주 특별한 동화』 란 책이야. 이 출판사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란 부제를 붙인 『열두 사람의 아주 특별한 동화』 와 ‘사라져 가는 우리의 소리 이야기’란 부제를 붙인 『열두 가지 소리의 아주 특별한 동화』 등 ‘아주 특별한 동화 시리즈’를 내고 있단다. 아주 특별한 동화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너한테 읽으라고 권하는 김에 몇 마디 해줄까 한다. 이 책은 강정규 선생님 외 열한 분의 선생님이 쓰신 동화 12편을 모은 책으로서 이상호·정수영 두 분 선생님이 그림을 그리셨단다. ‘전래놀이’가 무엇인지 너는 잘 모르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나는 회사원으로서 박사 과정에 다니고 있었으니 흔히 하는 말로 주경야독을 하는 셈이었지. 언제나 저녁 늦게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는 나를 맞이하는 건 다섯 살 난 너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었다. 맞벌이하던 네 엄마가 밀린 집안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너의 손을 잡고 놀이터를 향해야만 했다. 어둠이 깔린 텅 빈 놀이터에서 너와 나는 함께 그네를 타거나 시소를 타기도 하고, 정글짐에 오르기도 했다. 때로는 신발을 벗어 모래 장난을 하기도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한 시간 정도를 그렇게 놀다가 와야 너는 잠이 들었고, 아빠의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것이었다.
그 어두컴컴한 놀이터는 종종 나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었다면 내 삶이 얼마나 누추했을까, 뼈저리게 느낀 것도 그 놀이터였다. 딱지따먹기, 땅따먹기, 자치기, 팽이치기, 물수제비 뜨기, 썰매타기 등등. 나는 계절과 상황에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던 어린 시절의 놀이를 떠올릴 수 있었고, ‘내 딸의 유년기가 그리 많은 추억을 간직할 수 없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메어지기도 했었단다. 그네·미끄럼틀·시소·정글짐 등이 갖춰져 어딜 가나 천편일률적인 놀이터는 내 아이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그 명백한 사실이 나를 안타깝게 했었지.
최근에 내가 읽은 이 책은 순식간에 나를 너와 놀던 그 놀이터로 데려다 놓았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의 옛친구를 만난 기분이었지. 그 반가움은 아마 그때 내가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았던 내 어린 시절의 놀이를 고스란히 되살려 놓은 점에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여러 가지 들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곧 교육이라는 전래놀이의 가치를 자연스레 알려주는 데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특별한 동화책에 나오는 열두 가지 놀이는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지만 지금의 40대 이상에게는 아주 친숙한 것이란다. 옛친구들이 모이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나가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당시에는 잘 알지도 못했던 (사실 알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전래놀이의 장점이 한눈에 보인다. 우선 자연 친화적이라는 점. 발문을 쓴 분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래놀이는 그 종류가 200가지가 넘는다는데 그 대부분의 놀이에서 주인공은 사람과 자연이었지. 그곳에 모인 친구가 몇 명이건, 나이가 몇 살 차이가 나건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면 하나에 맞는 놀이가 있었고, 둘이면 둘에 맞는 놀이가 있었다. 들판에서는 들판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있었고, 강가에선 강가 나름대로의 놀이가 있었다. 길고 짧은 막대기밖에 없으면 자치기를 하면 되었고, 돌멩이가 있으면 비석치기를 했다. 강가에서 납작한 조약돌을 주우면 물수제비 뜨기를 하고 이도 저도 마땅치 않고 친구들만 여럿일 때는 못 찾겠다 꾀꼬리 놀이를 하면 되었다. 앞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답답해 먼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땐 긴 새끼줄 하나를 묶어 기차놀이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놀이들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놀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자치기에 쓸 막대기 하나를 고르면서도 처음에는 이 나무 저 나무를 주워 쓰다가 마침내 탱자나무나 오동나무를 선택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안목을 갖게 된다. 나무의 재질에 대해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말타기 놀이를 하면서 힘이 어떻게 분배되어야 가장 효율적으로 지탱되는가를 알게 되고, 구슬치기 놀이에서는 엄청난 집중력을, 바람개비 놀이를 통해서는 정교하고 섬세한 손동작을 배우게 된다. 이렇게 몸으로 배운 감각은 평생 잊혀지지 않으며 생활 구석구석에서 요긴하게 사용된다. 오늘날 대학까지 마친 사람들이 못질 하나 제대로 못하고, 전구 하나를 제대로 갈아 끼우지 못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래놀이의 또 다른 장점은 배타적이지 않고 어울려 논다는 점이다. 요즘의 놀이터가 인원을 제한하고 네 편, 내 편을 명확하게 가르는 특징을 보인다면 대부분의 전래놀이는 상대방과 더불어 노는 편이다. 물론 위계질서나 힘의 원칙이 분명하게 작용하는 놀이도 있지만 그곳에 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편을 만들어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단다. 새끼줄 하나를 허리에 묶어 온 동네를 돌아오는 기차길 놀이는 서너 명이 시작하여 마칠 때는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 하기도 했다. 게다가 전래놀이는 주로 몸을 이용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아이들 성장에 맞는 적절한 운동이 늘 함께 했다. 지구력·민첩성·유연함·집중력 등 현대의 운동들이 요구하는 갖가지 특징들이 두루 갖춰져 있어 아이들에게 따로 운동을 시키지 않아도 단계에 맞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효과를 갖춘 것이다.
이런 전래놀이의 가치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각기 상황에 맞는 동화를 삽입하여 쉽게 잊혀지지 않도록 했다는 점이다. 사실 일부러 찾아보지는 못했어도 전래놀이의 방법과 가치를 써놓은 책들은 그 동안 적지 않게 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에 소개된 놀이가 억지로 먹어야 하는 보약처럼 일부러 찾아 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여기에서는 ‘나도 한번 해 볼까?’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동화 속의 감동적인 인물들이 친구처럼 느껴져 그들의 놀이를 따라서 시도해 보는 데 그리 큰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책에 소개된 놀이들이 장소나 상황의 큰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놀이라는 점과 동화의 말미에 놀이에 관한 간략한 해설과 방법을 덧붙여 놓은 점도 편집자의 세심한 배려로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게재된 동화 또한 놀이를 소재로 한 점이 아니더라도 친구 사이의 갈등과 우정, 인간 사이에 오고가는 정을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단다.
대부분의 책이 다 그러하겠지만 이런 책을 기획해 만들어내기까지는 편집자의 피땀 어린 노력과 정성이 들어갔을 것이다. 사라져 가는 전래놀이의 가치와 즐거움에 대한 이해와 애정, 오늘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이 아닌 놀이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건강하고 유익한 놀이를 제공하고 놀아주기보다는 뭔가를 사주는 것으로 아이에 대한 책임을 대신하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 컴퓨터 게임과 아파트 놀이 시설에 길든 아이들에게 전통놀이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기 위하여 놀이를 소재로 한 동화를 기획한 점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이 책에 경의를 표하고 싶구나.
하지만 요새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직접 그 놀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워낙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어 아이들이 공감을 할까 몰라. 요새 아이들 정서에 맞지 않는 동화들이 있어 네가 읽기에는 별 재미가 없을 거라는 걱정이 앞선다. 12편의 동화가 그 시절을 그대로 복원할 것이 아니라 지금 아이들의 관심 영역 안에서 소화해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게임이며 게임보이를 응용하거나 현대적으로 응용하는 방법을 강구했더라면 어땠을까.
전래놀이에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요즘 아이들이 동화책 한 권 읽었다고 선뜻 전래놀이에 다가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함께 놀 친구이고 놀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일이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학원에 보낼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자유를 줘야 해. 나머지는 아이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민휘 너랑 한밤에 텅 빈 놀이터에서 꼭 한 시간 정도 놀다 오던 그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전래놀이 몇 개라도 너한테 가르쳐주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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