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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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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

서명 :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글쓴이 : 김 종 호 문화일보 논설위원

저/역자 : 한창기 지음 | 윤구병 외 엮음

출판사 : 휴머니스트

2007-10-08 / 352쪽 / 16000원 / 독자대상 : 고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된 월간 종합지 「뿌리깊은나무」는 그 목숨이 4년 남짓 동안 이어졌을 뿐이긴 했으나 한국 잡지 역사에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창간사에서 “그 이름대로 오래디 오랜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도 새로움의 가지를 뻗는 잡지가 되고자 한다”고 한 취지를 잡지의 형식과 내용에서 두루 구현해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잡지문화를 창출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주역이 문화적 안목과 통찰력이 남달리 뛰어난 한창기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해 “문화는 역사의 꽃이 아니라 그 뿌리이고, 정치나 경제는 그 열매”라는 생각, 나아가 “우리 문화의 바탕인 토박이 문화가 세계 문화의 한 갈래로서 씩씩하게 자라야 세계 문화가 더욱 발전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며 실천해 보이려고 했다. 그런 만큼 「뿌리깊은나무」의 편집 형식인 겉과 내용인 속은 기본적으로 ‘발행•편집인 한창기의 생각’과 다름없었고, 그의 글을 묶은 책 『뿌리깊은나무의 생각』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만하다.

그 잡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한창기 발행인으로부터 글쓰기의 ‘기초’를 비롯해 많은 것을 배우며 문화에 대한 눈도 뜨기 시작한 나는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독후감인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사소할지도 모르는 일로 잠시 고민을 했다. 호칭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1997년 예순한 살에 별세한 고인이기는 하지만, 그냥 ‘한창기’로 일컫기는 왠지 송구스럽고, ‘한창기 씨’나 ‘한창기 선생님’으로 호칭하기도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그 잡지에서 일할 때 주로 부르던 대로 ‘한창기 사장’ 또는 ‘한창기 사장님’이 입에 익어 자연스럽지만, ‘사장’은 그의 삶의 성격을 부적절하게 규정하거나 왜곡해 상징할 수 있다는 느낌이 짙었다.
그런데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을 읽으며, 그가 공교롭게도 20년 전의 글을 통해 ‘사장’도 ‘선생’도 마땅찮은 호칭이기 마련이어서 그런 소리 좀 덜 들었으면 좋겠다고 밝힌 사실을 나는 알았다. 서비스업체에서 손님들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습관이 만연해 있는 현실을 못마땅해 한 그는 “실제로 모르는 사람을 무턱대고 사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심사는 사기성이 농후하달 수도 있다”며, “그 심사에는 ‘이래도 안 좋아해? 엿 먹어라!’ 하는 멸시와 조롱과 심술의 물이 들어 있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232쪽)
특히 진짜 사장의 경우에는 자신이 밥벌이로 관여하는 기업 활동의 영역 밖에서는 ‘사장’대접 받고 싶어 하기보다 오히려 ‘사람’대접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막상 회사조직의 발상지인 서양에서는 회사 임원들의 이름을 직장 칭호를 붙여 부르지 않고 흔히 아무개 ‘씨’한다고 소개한 그의 생각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장’은 법률적인 칭호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리 그럴싸한 것도 못된다. “주식회사에서는 법률적인 감투로 이사, 대표이사 같은 것만을 둘 뿐이니 사장이라고 해봤자 고작 ‘상머슴’으로 채용되는 이에게 붙여주는 편의상 칭호에 불과”하고, “개인업체에서도 ‘업주’ 또는 ‘대표’가 있을 뿐이니, 그 사장이라는 말은 가짜 벼슬”이기 때문이다. ‘선생’이나 ‘선생님’호칭도 크게 상업화해 예술•문화•전통 등의 탈을 쓴 장사꾼들이 가짜 수준의 작품을 팔아먹기 위해 흔히 악용함으로써 함부로 부르고 부름받고 할 소리가 아닌 점에서는 ‘사장’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그의 호칭 이야기를 길게 인용한 것은 한창기 씨의 글이 지닌 생명력을 입증해주는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꼽을 만하기 때문이다.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에 55편의 칼럼으로 실린 ‘한창기 씨의 생각’은 신문•잡지•사보 등에 발표된 지 이미 오래 지났지만, 거의 모두 그 ‘유효 기간’이 아직 지속중인 것으로 읽힌다. 가장 가깝게는 28년 전, 가장 멀게는 37년 전에 발표된 글인데도 그렇다. 시•소설 등 본질적으로 시공을 뛰어넘는 문학작품이 아니라 사회 현실이나 문화 현상 등을 주로 다뤄 시의성을 띨 수밖에 없는 속성의 칼럼인데도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개 어느 개인이 각종 매체에 게재했던 토막글들을 모아 펴낸 칼럼집은 저자 또는 그 제자들이나 가족 등의 기념품에 머물기 쉽다. 시의성이 뚜렷한 발표 당시에는 신선하고 날카로운 현실 분석이나 비판이 돋보이고 감동을 안겨주는 글일지라도 세월이 오래 지난 뒤까지 널리 읽힐 만한 경우는 드물어 예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이 그 예외에 속해 20〜30여 년 전의 글인데도 읽는 맛이 여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편집자들이 이 책의 출판을 결정하며 이 사회에 지금도 유효한 ‘30년 전의 한 문화인의 사유’를 던져 ‘우리 시대가 잊어서는 안될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게 하겠다고 했다는 그 의도에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은 글이기 때문일 듯하다. 삶의 현장에서 흔히 접하면서도 무심코 지나쳐온 주변의 작지만 의미 있는 일에 대해 깊이 있게 사유해 그 가치를 찾는 방식, 문화의 창을 통해 세상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 공동체 사회의 건강과 품격을 판가름하는 소통의 세련성 등을 일깨워주거나 키워주는 글을 읽는 맛이 각별하다. 토박이말과 토박이문화가 왜 아름다운지, 어떻게 일상 속에 그 맥을 이어오는지, 크게 훼손 또는 왜곡돼 제 모습을 잃음으로써 공동체의 품격을 낮추고 삶을 천박하게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때로는 낮고 따뜻한 목소리로 때로는 분기탱천한 고함으로 일러주기도 한다.
소통의 도구이자 문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언어의 사용에 대한 글만 해도 그렇다. 이를테면 음식점에서 종업원이 “십팔번 테이블”하지 않고 “열여덟 번 테이블”하는 식으로 외치는 풍조의 확산을 반기며,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일, 이, 삼, 사”하는 식으로 말하지 말고 “하나, 둘, 셋, 넷”하는 식이어야 바람직한 이유를 이런 요지로 설명한다.

우리가 쓰는 ‘일, 이, 삼, 사’는 ‘하나, 둘, 셋, 넷’하는 대신에 한자를 빌려와 쓰면서 ‘이, 얼, 산, 스’하는 중국말을 한국화한 것이다. 일본 사람들도 ‘히토쓰, 후타쓰, 밋쓰, 욧쓰’하는 대신에 중국말을 일본식으로 해서 ‘이치, 니, 산, 시’했으나, 다행히 서로 혼동되기 쉬운 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전화 등을 통해 말하거나 들을 때 ‘일’과 ‘이’, ‘삼’과 ‘사’ 등을 혼동하는 경우가 잦은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중국 사람 시늉하다가 손해만 보고 있다. ‘온’이 ‘백’이었고, ‘즈믄’이 ‘천’이었음을 아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어 그나마, 아직 남아있는 토박이말 숫자도 머잖아 다 잊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진리는 저 드높은 하늘에 있지 않고 오히려 한 치 발바닥 밑에 있다. (56쪽, 발췌 인용)

토박이말이 일본말에 당한 공격과 피해는 당연히 더 적나라하게 더 많이 지적된다. 토박이말로 아이와 가게와 상품의 이름을 짓는 바람이 일고 있는 일부 현상을 반갑게 주목하며 지적한 한 대목을 요약 발췌하자면 이런 식이다.
이 나라의 신식 상업은 일본 지배 밑에서 싹이 터 상업 업체나 그 상품의 이름은 한자로 된 일본말을 직역한 것이 흔하다. 일본 사람들이 소개한 ‘가부시키가이샤’의 개념은 ‘주식회사’가 되고, ‘대장간’은 그 엇비슷한 시설을 일본 사람들이 ‘뎃고조’라고 불렀기 때문에 직역해 ‘철공소’가 되었다. ‘방앗간’이 ‘정미소’, ‘옷집’과 ‘밥집’이 각각 ‘나사점’, ‘식당’ 등이 된 것도 같은 연유다. ‘진지’는 일본 사람들이 ‘쇼쿠지’라고 해서 ‘식사’가 되었고, 마침내 ‘상은 어떻게 차릴까요?’가 ‘식사는 뭘로 하시겠어요?’로 바뀌기까지 해 그 대답이 ‘젓가락으로 하지요’라고 해야 안성맞춤일 지경이 됐다. (42~43쪽)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은 전체가 그런 식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각별히 공감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대목에 밑줄을 긋는 습관이 있는 독자라면,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을 다 읽은 뒤에 책이 온통 밑줄 투성이가 된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랄지 모른다. 그러지 않는 독자라도 일각에서 한창기 씨의 생각과 지혜와 시각 등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는 말에는 그럴 만도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마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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