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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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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과학사상으로 사회개혁을 말하는 의산문답(醫山問答)

새로운 과학사상으로 사회개혁을 말하는 의산문답(醫山問答)

서명 : 개혁을 꿈꾼 과학사상가 홍대용의 고뇌 의산문답

글쓴이 : 박성순(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저/역자 : 홍대용 원작│이숙경 김영호 옮김

출판사 : 꿈이있는세상

2006-04-15 / 196쪽 / 9000원 / 독자대상 : 고

홍대용(1731~1783)은 조선후기의 실학 사조를 대표하는 북학파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실학자 중에서 서양과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으로 평가된다. 저명한 과학사학자인 박성래(朴星來) 교수는 그의 저술에서 "홍대용은 조선시대에 가장 처음으로 서양과학의 중요성에 분명하게 눈뜬 선각자였고, 한국 역사상 최초의 서양과학 발견자로 꼽아도 좋다"고 평가한 바 있다.
과학 기술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그는 당시 청주 수촌(壽村, 지금은 행정구역 명칭이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수촌 마을로 되어있으며, 충남 문화재자료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의 자기 집에 농수각(籠水閣)이라는 천문 관측소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혼천의(渾天儀, 천문 관측기구)와 서양식 후종(候鐘, 일종의 자명종)을 만들어 두기도 하였다.
그가 퇴거하여 살던 이 시골집에 그의 스승이던 김원행(金元行)이 내려준 편액 글자가 바로 '담헌(湛軒)'이었고, 홍대용은 이것을 취하여 당호로 삼았다. 나중에 홍대용과 국적을 초월한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 청나라 학자 반정균(潘庭筠)은 '담헌'이라는 호와 홍대용의 인물됨을 비교하여 "군자의 도(道)는 마음에는 잡됨이 없고 물(物)에는 탐심이 없는 것이다. 그는 몸이 청명하고 집이 허백(虛白, 청빈)하였으니 거의 '담(湛)'이란 글자의 뜻에 적합함을 얻음이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홍대용의 자연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은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서양 자연과학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 무렵부터 중국을 통해서 조선에 전래되기 시작한 한문으로 씌어진 서양 관련 서적인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통해서 홍대용은 종래의 주자학적 자연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과학사상에 눈을 떴다. 그러던 중 1765년(영조 41)에 연행사(燕行使)의 서장관으로 임명된 작은 아버지 홍억(洪檍)의 수행군관 신분으로 청나라 수도 연경에 가게 되면서 그는 그동안 책으로만 익혀왔던 서양과학의 실상을 확인한다.
그는 연경에 머무는 두 달 동안의 기간 중 의식적으로 서양 사람들과의 만남을 도모하였다. 그중에서도 서양인들이 주관하는 흠천감(欽天監) 관장 하의 관상감(觀象監)과 더불어 서양식 천주당은 홍대용이 서양의 자연과학 수준을 확인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이 곳에서 그는 청나라 흠천감의 책임자인 감정(監正)으로 있던 유송령(劉松齡, Hallerstein)과 부정(副正) 포우관(鮑友管, Gogeisl) 등의 서양 선교사들을 만나 환담하였고, 자명종(自鳴鐘) 요종(鬧鐘) 풍금 등의 과학기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조선에 돌아와서 새로운 자연과학지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지은 글이 『의산문답』이었다. 『의산문답』은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과 더불어 홍대용의 과학사상을 대표하는 양대 저술이다.
『의산문답』은 19세기 이전에 씌어진 자연과학에 관한 한국인의 글 중에서 가장 긴 것으로 평가된다. 글자 수가 무려 12,000자에 이른다. 홍대용은 『의산문답』 속에서 지구설(地球說) 지전설(地轉說) 무한우주설(無限宇宙說) 다세계설(多世界說) 등 서양 자연과학 지식을 널리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 지식은 전통적인 중국 중심 사상을 깨뜨리고 근대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주춧돌 역할을 하였다.
서양의 과학사상을 담은 『의산문답』은 홍대용이 연경 여행을 통해 서양의 과학지식을 접하고 나서 그동안 자신을 비롯한 조선의 지식인들이 얼마나 편협한 지적 세계에 안주해 왔나를 풍자했다. 조선의 학자 허자(虛子)와 의무려산(醫巫閭山)에 숨어 사는 실옹(實翁)의 대화체로 쓰인 이 글은 사실상 홍대용 자신이 연행을 통해서 배우고 느낀 바를 정리한 자문자답의 글이다.
『개혁을 꿈꾼 과학사상가 홍대용의 고뇌 의산문답』은 바로 홍대용의 과학사상을 대표하는 『의산문답』을 역사학을 전공하신 이숙경 김영호 두 분의 선생님께서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의산문답』의 번역이 책으로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의 책은 기존의 번역서들과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책의 판형이나 그 편집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역자들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면 많은 독자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원문을 여러 가지로 보완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원래 장 절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원문을 그 내용에 따라 여러 개의 장 절로 구분하여 『의산문답』의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였고, 원문의 용어를 그대로 직역하지 않고,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쉬운 우리말로 바꾸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250여년 전의 고문을 오늘날의 살아있는 언어로 되살려내기 위한 역자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독자들이 번역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각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주로 용어, 인명,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이 많아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상과 같이, 이 책은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쉬운 고전 번역을 세심한 편집을 통해서 누구나가 읽기 쉬운 교양서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편집에 쏟은 정성 못지않게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 논의가 분분하던 문제, 즉 왜 홍대용이 서양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들여오려고 했느냐하는 의문점에 대해서 역자들은 적극적인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홍대용이 서양의 과학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인가 다른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역자들의 입장은 확고하다.
역자들은 분명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홍대용은 전통적인 우주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극복함으로써 모순과 위선으로 점철된 구태를 벗어나려 했다는 것이다. 『의산문답』에는 분명 이전까지와는 다른 파격적인 자연과학적 지식이 기술되어 있다. 역자들은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의산문답』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1.허자, 세상을 나와 실옹을 만나다, 2.사람과 천지만물은 똑같은 존재이다, 3.지구는 둥글고 쉬지 않고 돈다, 4.무한한 우주에 한낱 지구가 있는 것이다, 5.대자연의 법칙 속에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다, 6.내가 사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역자들은 "홍대용이 『의산문답』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위정자를 비롯한 기득권층이었던 양반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홍대용은 지고지순한 자연의 법칙과는 상관없이 비현실적인 성리학에 빠져 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가식과 위선으로 무장한 기득권층의 허세를 진실로 깨트리고 싶었던 것이다. 자연과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홍대용은 당시 조선사회의 비합리적인 모순을 지적하고 세상의 이치를 바로 세우고 싶었던 것"이라고 진단한다. "급변하는 조선사회였지만 여전히 사회구조 자체가 성리학에 기반을 둔 양반 중심의 사회였기에 당시 기득권층인 양반의 의식변화 없이는 근본적이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라는 역자들의 지적은 탁견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 전체를 일관하는 지나친 개혁의 강조는 그 개념과 논리적 정합성에 있어서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약간의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의산문답』의 역사적 의의를, 시종일관 오늘날의 사회개혁과 연결지어 설명하려는 역자들의 진지한 태도에서 생동하는 역사의식이 느껴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부지불식간에 얼마나 편협한 지적 세계에 안주하여 구태의연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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