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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서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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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책 버리기

책 버리기

글쓴이 : 이한우 좋은책선정위원

91년 결혼해서 월세살이를 시작한 이후 93년, 97년 그리고 지난해 말 세 번에 걸쳐 이사를 했다. 월세 살 때는 자그마한 거실에 방 두 개가 전부였기 때문에 서재는 고사하고 공부방이라 할 만한 공간도 갖지 못했지만 93년 역시 방 두개짜리 19평 아파트로 옮겼을 때 아내는 작은 방 하나를 ‘과감하게’ 나의 서재로 인정해주었다.
처음 신혼집을 장만할 때만 해도 가재도구라고 할 게 거의 없었던 형편이었기 때문에 ‘책 버리기’는 생각지도 못했다. 뭐라도 하나 있으면 그것만으로 뿌듯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대학 시절 구입했던 ‘삼성 사상전집’(50권)부터 각종 좌파 원서에 해설서들은 나의 신혼을 지켜주는 바람막이였다.
그러나 93년 이사를 앞두고 약간의 고민이 생겼다. ‘저 책들을 다 가져가야 하나?’ 학교에 다닐 때나, 91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나 나의 관심사는 (서양)철학책들이었다. 특히 90년대 초반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나도 그 분야 책들을 열심히 사모아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사실 포스트post라는 말이 보여주듯 이미 모더니즘이나 마르크스주의는 한물가고 있었다. 20대 때 사회주의 사상과 철학에 깊이 빠졌던 나로서는 그 분야에 관한 책들이 서가에서 적어도 3분의 1은 차지하고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편인 독서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을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꺼림칙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실용적인 걱정도 컸다. ‘지금 버렸다가 뒤에 다시 읽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그러나 당시 문화일보에서 학술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1주일이면 10여 권이 넘는 새로운 책들을 집에 가져올 수 있었다. ‘버리자!’ 일단 사회주의 계열 책 중에서 텍스트로서의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 삼류 해설서부터 모아서 버렸다. 대신 버리기 전에 한번쯤 훑어보는 것으로 책과의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주로 20대 초반 학생운동권 서클에서 선배들로부터, 때로는 동료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읽었던 책들이라 작별의 아쉬움은 생각보다 컸다. 내 삶의 한 부분이 뭉텅이로 떨어져나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여, 안녕!’

97년 상계동의 30평대 아파트로 이사 갈 때 감격과 흥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방이 3개였으니 처음으로 번듯한 내 서재를 가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맨 먼저 한 것도 가구회사를 방문해 그 방의 삼면을 다 서가로 짜는 계약을 맺은 일이었다. 19평 아파트 반쪽짜리 서재에서는 박스에 포장된 채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책들이 다 서가에 꽂힐 수 있었다. 책이 있어야 할 장소는 역시 책상 위가 아니면 서가여야 한다. 박스 안에 들어 있는 책은 결국 주인을 ‘알현’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 때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비롯한 원전 텍스트들은 서가에 무사히 안착했지만 레닌이니 엥겔스니 하는 이류혁명가나 사상가의 책들은 쓰레기통 신세였다. 사실 그보다는 사상전집류 등을 더 많이 버려야 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90년대 들어 신진학자군이 형성되면서 영미권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어권이나 프랑스어권 책들도 처음으로 제대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일본어 중역重譯이 대부분인 사상전집류의 책들은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2007년 11월말까지는 내 인생의 ‘상계동 시기’라 이름할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지금까지 내가 쓰고 번역한 책들의 절반 가까이가 탄생했으니 나름대로 가장 생산적인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조선왕조실록 번역판을 완독하고 6권의 ‘군주열전’을 써냈다는 것은 나름의 사건이었다.
사실 나는 역사 쪽에는 문외한에 가까웠다. 주로 동양과 서양의 철학에만 관심을 쏟았고 굳이 넓혀봤자 사회철학과 역사철학 정도로 공부의 폭이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니었다. 상계동 시절 나의 관심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탐색’이었다. 상계동 내 서재는 문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동양과 한국관련 책들로, 오른쪽에는 서양철학과 사회과학 이론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연스럽게 새로 책을 구하고 지난 책들을 버리고 하는 과정에서 서가는 그렇게 리모델링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두 분의 사상적 스승이 계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전 고려대 교수 김충렬 선생님은 동양 정신세계의 깊이를 전해주셨고 지금은 충북 괴산에서 지내시는 외국어대 교수 이기상 선생님은 서양, 특히 하이데거 철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해주셨으며 삶에 대한 진솔한 태도 또한 몸소 가르쳐주셨다.
90년대 후반 실학자인 성호 이익(1681~1763)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국인으로서 가장 먼저 동서양의 교섭을 고민했던 사상가가 누구인지를 추적해 올라간 결과 성호 이익에 다다랐다. 성호선생은 부친을 통해 청나라에 들어와 있던 서구문물을 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호선생은 서양 탐구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파고 들었다가는 사문난적斯文亂敵으로 몰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성호 이익을 공부하던 중에 엉뚱한 의문이 떠올랐다. 시대적으로 보면 이익은 숙종 경종 영조에 걸쳐 살았던 인물이다. 이 때 근대적 사고의 싹이 소개되었다면 한참 후인 정조 때에는 뭔가 더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야 정조를 뛰어난 임금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익의 부친이 이미 지구본을 비롯한 서구의 과학지식을 갖고 들어왔음을 감안한다면 정조는 그로부터 거의 100년이라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는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정조가 정말 개혁군주라면 적어도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같은 게 없을 수 없다. 그런데 단편적으로 살펴본 정조의 생애에서 그런 개혁적 면모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보수의 정통으로 돌아가 서학西學을 배척하는 보수혁명가의 모습이 강했다.
이 무렵 나는 막다른 골목에 막힌 느낌이었다. ‘조선은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역사였는가?’라는 가슴 답답한 의문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강만길류의 자본주의 내재적 맹아론이라는 비현실적인 도그마에 의탁해 위안을 받기에는 한국 좌파들의 몰沒지성과 비非현실성으로부터 당한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논어」에 ‘친구가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던가? 정말로 오랜 만에 만난 친구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그러나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나에게 ‘세종’을 공부해볼 것을 권했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사실 세종의 실체가 궁금했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였다. 그 친구는 「조선왕조실록 CR롬」을 구해주었다. 당시로서는 수백만원짜리였다. 지금이야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지만 그 때만 해도 대학 도서관과 전문연구자 몇 명 말고는 개인적으로 그것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던 시절이다.
그 엄청난 ‘보고寶庫’가 나의 상계동 ‘서재’에 자리잡았다. 2001년 말부터 본격적인 실록읽기가 시작됐다. 사실 그 때는 조선시대 관직명도 제대로 모를 때였다. 칼 포퍼가 말했던가? 모든 학문의 방법은 하나라고. 시행착오trial and error. 시행착오를 스승삼아 꼬박 7년 동안 우리말로 번역된 조선왕조실록을 (고종실록 일부와 순종실록 전부를 제외하고서) 통독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내 서재에는 조선 초기, 중기, 후기를 다룬 일반 개론서부터 정치사, 제도사, 문화사, 사상사 관련서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서양철학과 사회과학책들은 서가에서 나와 서재 한 귀퉁이에 쌓여 있다가 박스로 들어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나마 서양철학 추방전쟁에서 살아남은 철학자는 하이데거와 니체였다. 다른 철학자들은 포기해도 이 두 사람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조금 더 넓혀 상도동으로 이사하면서 처음으로 제법 번듯한 서재를 확보했다. 작년 이사할 때도 절반 가까운 책을 버렸다. 주로 박스에 담겨 있던 서양 사회과학책들이었다. 어쩌다보니 지금 서재에 있는 서양 책은 하이데거, 니체 외에 각종 전기들 말고는 대부분 한국사 및 동양고전 관련서들이다. 5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서울을 떠나 한적한 시골에서 책 읽고 쓰는 것만으로 여생을 보내게 될 텐데 그 때 이사를 하면서 나는 또 어떤 책들을 버리게 될까? 잘 버리기 위해서라도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책들을 잘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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