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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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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들려주는 이 장면

『와일드 펀치』

『와일드 펀치』

글쓴이 : 기준영

필자소개 : 소설가

저자가 들려주는 이 장면} 『와일드 펀치』

처음엔 한 여자가 떠올랐다. 지구상의 여자인지, 상상의 여자인지, 먼 과거나 미래에서 온 여자인지 모를, 그런 알쏭달쏭한 여자. 그 다음엔 한 남자가 떠올랐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겪고 통과해온 남자. 그러나 아직 미소가 선량한 남자.
그들이 눈빛을 교환하는 첫 장면을 떠올리자 저절로 빗소리가 들려왔다. 비 내리는 오후의 공기와 냄새, 나른한 느낌을 주는 실내조명. 그 장면에 흘러나오는 음악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글 파일을 열고 제목을 타이핑했다. <와일드 펀치>.
‘와일드 펀치’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여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첫 장편이니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다. 상황이나 인물들 전부를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전형들로 딱딱하게 채워 넣고 시작하지 않겠다는 자각은 분명했다. 나머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내게는 라스트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까지 도달하는 여정이 어떨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날마다 내 인물들이 궁금했고, 그들이 맞닥뜨릴 시간들에 두근거렸다. 밖에서 다른 일을 보고 있을 때조차도 그들 때문에 집까지 한달음에 뛰어가고 싶은 날들이 생겨났다. 만약 누군가 이 소설 속 인물들을 이따금씩 생각하게 되거나, 어떤 장면과 대화 들을 마음속에 품거나 곱씹게 된다면, 거기서 내 맥이 같이 뛰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두 커플과 한 소년과 그의 어머니, 소년이 돌보는 유기견이 이층집에 모여 가장 아름다운 휴일 오후를 바라보게 되는 얘기 정도로 줄여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가족 너머의 가족의 탄생. 일상이 날리는 펀치. 이 책을 소개하고 있는 몇몇 매체의 문구들은 그렇다.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은 읽는 분들의 몫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삶이란 이름의 로맨스’ 정도로 부르고 싶다. 나는 인생의 진짜 경험들은 예기치 않게 들이닥친다고 여기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닥치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고 대비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걸 떠올린다면, 내 소설의 인물들은 다소 고통스런 경험들이 있을지언정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다. 인물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방식, 그들이 맞닥뜨리는 체험들은 대개 운명적인 사랑의 순간처럼 그려졌다. 너에게서 나를 보는 순간. 너를 부정하면 나를 알 수 없는 시간. 있는 그대로의 너를 그저 받아들이게 되는 타이밍. 다 알 것 같다고 치부했던 인생에 새삼 겸허해지며 소소하게 뭔가를 배우게 되는 경험들이 그런 데서 태어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에 떠올렸던 등장인물에겐 ‘미라’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그녀는 소설 속에서 자기 짝이 될 태경에게 악수를 청하며 제 이름을 이렇게 소개했다.
“난 미라, 지미라. 이름이 좀 욕 같죠.”
그 여자의 태도는 조금 아슬아슬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대로 내 마음에 들었다. 지마라가 가능케 한 우연과 필연들은 라스트까지 가는 여정을 즐겁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엔딩에 인물들이 모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들과 헤어지는 일에 진심으로 섭섭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상상의 안식일’이란 챕터로 완성됐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는 거기서도 흘러나온다. ‘현명한 사람들은 말하죠. 어리석은 자만이 사랑에 뛰어든다고. 하지만 난 당신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네요.’
<와일드 펀치>란 제목은 몇 가지 원액이 섞인 칵테일, 혹은 방어하지 못한 채로 맞는 거친 한 방을 연상하게도 한다. 감수성과 체험, 기질에 따라 그 맛과 향과 강도가 다르게 환기되기를. 걷고 달리고 부딪치고 헤매다 다시 식탁에 마주앉곤 하는 이야기 속 인물들로부터 ‘나’와 ‘우리’를 발견하는 체험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내게 아름다웠던 것들이 당신에게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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