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보기 웹진 하위메뉴 및 검색으로 가기 전체메뉴로 가기

웹진

메일 매거진 발송 신청

2012년 05월
책&

책&은 책과 함께,책 속에는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책을 통한 사람들의 소통, 책을 통한 풍요로운 문화의 향유를 지향하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홈 > 웹진 > 책& > 특집기사

특집기사

명작의 탄생}허먼 멜빌의 『모비딕』(1851)

명작의 탄생}허먼 멜빌의 『모비딕』(1851)

글쓴이 : 김연경

필자소개 : 소설가

“불을 정면에서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라.”

『모비딕』이 자신의 다리를 빼앗아간 고래에게 복수를 하다가 파멸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래 뼈로 만든 의족에 몸을 의지한 채 앞만 바라보며 서 있는 노인, 신을 믿기는커녕 그 스스로 신이고자 하는 존재, 대학까지 다녔음에도 식인종과도 어울릴 만큼 담대한 뱃사람…. 에이해브 선장은 시종일관 신비스러운 존재로 그려진다. 주로 고래를 향한 집요한 복수심과 비장한 투지 때문인데, 이것이 스타벅의 눈에는 불경스러운 반역으로 보인다. 근육질의 건강한 몸에 청교도적인 윤리와 합리적 실용주의를 겸비한 30세의 일등항해사는 “저는 고래를 잡으러왔지, 선장님의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216)라고 말한다. 복수 따위는 돈벌이도 되지 못하거니와 그저 맹목적인 본능으로 공격을 했을 뿐인 “말 못 하는 짐승”에게 원한을 품었다가는 천벌을 받으리라는 것. 그 짐승을 에이해브는 어떤 거대한 힘을 감추고 있는 “판지 가면”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공격하려면 우선 그 가면을 뚫어야 해! 죄수가 감방 벽을 뚫지 못하면 어떻게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겠나? 내게는 그 흰 고래가 바로 내 코앞까지 닥쳐온 벽일세.”(217) 비단 복수심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닿지 않는 운명(신 혹은 자연)에 대한 분노를 모조리 고래에게 쏟아 붓는 셈이다. 실상 열여덟 살의 어느 아름다운 날 처음 고래를 잡은 이래, 40년을 고래와 함께해 온 늙은 선장의 한탄은 ‘교향곡’처럼 깊고 묵직한 울림을 낸다. 스타벅의 논리와 충고는 여러모로 바람직하지만 고래를 눈앞에 두고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고래야말로 그의 유일한 존재 이유인 까닭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681) 결국 에이해브는 고답적인 비극의 주인공답게 고래와 함께 바다 깊숙이 침몰함으로써 삶 마감한다. 하지만 이 비장한 운명극은 이 소설의 일부를 이룰 뿐이다.
『모비딕』은 원제(“Moby-Dick or, The Whale”)가 말해주듯 고래의 생김새와 생태와 종류, 고래를 잡고 해체하고 보관하고 활용하는 법, 고래 요리의 종류와 역사 등 정녕 고래학과 포경(捕鯨)에 관한 책이다. 모비딕은 고래 일반을 대표하는 ‘짐승’임과 동시에 <피쿼드> 호의 어느 선원보다 더 또렷한 형상과 성격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몸집의 소유자, 이마에는 주름이 잡혀 있고 등에는 하얀 혹이 피라미드처럼 높이 솟아 있는, 인간처럼 교활한 지성과 영원한 악의를 뽐내는 독특한 향유고래! 무엇보다도 “본질적으로 색깔이라기보다 눈에 보이는 색깔이 없는 상태인 동시에 모든 색깔이 응집된 상태”(246)와 같은 저 흰색이 압도적이다. 등에서 물줄기를 뿜어내며 검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하얗고 거대한 힘을 어찌 감당하랴.
한데 최후의 접전에서 살아남은 자는 묵직한 비장미와도, 또 청교도적 엄격함과도 거리가 먼 인물이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31) 이렇게 운을 떼는 청년은 지갑도 거의 바닥나고 뭍에는 딱히 흥미로운 것도 없어 기분 전환 삼아 배를 타게 되었다. 하필 포경선인 것은 고래, 저 경이롭고 신비로운 괴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이 출사표를 두고 더러 웅장한 말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의 어조는 대체로 덤덤하다. 자신이 속한 연극판과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도 명징하다. “다른 사람들은 고상한 비극에서 당당한 역할을 맡거나 우아한 희극에서 짧고 쉬운 역할을 맡거나 익살극에서 유쾌한 광대 역할을 맡는데, ‘운명’이라는 무대감독이 왜 나한테는 고래잡이 항해의 이 초라한 역할을 맡겼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36) 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은 퀴퀘그의 관과 <레이첼> 호 덕분인데, 이 우연의 일치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즉, 인간사의 흐름을 관장하는 모종의 메커니즘이, 어떤 원칙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정확히 어떤 것일까. 이슈메일 나름의 답은 이렇다. “인간들이여! 불을 정면에서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라.”(511)
“포경선은 나의 예일 대학이며 하버드 대학”(158)이라고 이슈메일은 고백한다. 멜빌 문학의 자양분 중 하나도 바다와 포경선, 남태평양의 섬에서 쌓은 경험이다. 물론 그가 그려낸 ‘자연’(야만)의 이면에는 ‘문명’이 깔려 있다. 은근히 정치 논리에 지배되는, 인종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피쿼드> 호는 19세기 중엽 미합중국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주인공들의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성경 및 기존 문학의 인유 덕분에 보편성이 확보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삼십대 초반의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하여 『모비딕』을 썼는데 이 소설과 더불어 망각과 침묵의 바다 속에 침몰한 형국이 되었다. 20세기 초 『모비딕』의 부활이야말로 눈 덮인 산처럼 거대한 모비딕이 바다 위로 웅비하는 모습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사이트 정보

서울시 강서구 방화3동 827 국립국어원 4층 우)157-857 대표전화:02-2669-0700 팩스:02-2669-0759 담당자:박재용